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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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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사람들의 뿌리내리기 돕는 사람들

(사)한국다문화연대 신영성 이사장

2011년 04월 17일 (일) 00:02:42 홍현선 편집장 editor@ucnnews.com

2002년 마지막 강의 날,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중국에 가본 적이 있나요?” “초대한다면 오실 수 있나요?”

코이카(국제평화봉사단) 프로그램으로 온 나이(?) 많은 중국의 학생이었다.

“아, 예. 중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갈 수 있지요.”

그 후 6개월이 지나 전화가 왔다. 중국 길림성 정부 초청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재중 동포-조선족으로 중국 길림성의 고급공무원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처음으로 중국에 가게 되었다. 이곳에 나를 인도한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십 여 년 전 강의를 통해 만난, 한 중국 고위공무원이었던 여학생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중국에 가게 된 신영성 이사장은 그때가 조선족을 알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살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누나가 떠오르기도 했고, 그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일깨웠고 그는 중국에 가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지 싶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안고 돌아온 그가 뜻 맞는 주위 사람들과 시작한 것이 ‘I Love Korea.' 라는 모임이다. 조촐하게 시작한 'I Love Korea.'는 후에 (사)한국다문화연대로 발전되었고, 모임에 의사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이 후에 국립중앙의료원에 다문화가정 진료센터를 개설하는 시작이 되었다.
 

 

▲ 지난 해 통의여관에서 가진 전시회에서 신영성 이사장(가운데)

 

사각 지대를 찾아

정부에서도 다문화정책에 신경을 쓰고 있기에 많은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어디나 그렇듯이 사각지대는 있다 한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그 사각 지대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몽골에서 의사였던 한 몽골 여성은 한국에 와서 지게차 운전 기사와 결혼을 했다. 남편은 직업이 있지만 일이 잘 안되다 보니 생활은 어렵고 그 와중에 임신을 했다. 그 몽골 여인이 나이가 많아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데 남편이 있다 보니 공적인 혜택을 받기 어려웠고, 어떻게 하지 못한 그 여인은 (사)한국다문화연대로 연락을 해 왔다. 그 여인은 전액 수술비를 면제받고 무사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정책보다는 인식

신영성 이사장은 다문화 정책은 많이 좋아졌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중국을 갈 때면 마음 아픈 일들을 많이 겪는다. 작년에 장춘에 갔을 때는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그 식당에서는 한국 사람에게 음식을 안 팔겠다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같이 간 조선족이 같이 왔으니 괜찮다고 설득해서 식사를 할 수는 있었지만 그때의 모습이 가슴에 박혀 시린 마음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저희는 사람들의 다문화에 대한 어떤 편견 같은 것을 없애기 위해 홍보대사도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크리스티나로 세웠습니다. 크리스티나도 다문화가정이다 하는 것을 인식시키고 사람들의 다문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주고자 하는 마음에서이지요.”

 

통의 여관에서 가진 전시회 ‘흩어진 사람들’

‘인간의 가치’를 묻는 문명 비판의 작업을 통해 ‘소수자’의 삶을 조형언어로 표현해온 화가로서의 신영성. 그는 ‘예술은 소통이다.’라는 기준에서 설치, 퍼포먼스, 회화의 조형언어를 삶의 영역으로 확대하였고, 작년 11월에는 통의 여관에서 다문화 사업 기금 조성을 위한 전시회를 가졌다. 그는 이 전시회에 그가 그린 그림 50점을 내놓았다.

 

번듯한 전시관을 놓아두고, 곧 무너져가는 여관으로 전시장을 잡은 이유는 그의 그림이 그곳에서 더 의미를 발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들의 소재는 소외된 사람들이다.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걸린 그림들은 사람의 얼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때론 웃고 때론 눈물 흘리고 때론 정처 없어 보이고, 때론 정겨운 그들의 얼굴은 어딘가 낯설은 듯 하면서 낯익다.

▲ <바람속에 머물다 6> Acrylic on canvas, 116x80cm, 2008년 신영성作

 

타국에서 이곳까지 와 뿌리를 내리려 발버둥치는 이주민들의 얼굴 같기도 하고, 그 옛날 이국 땅 어딘가에서 뿌리내리려 발버둥쳤던 우리 조상 누군가의 얼굴 같기도 하다. 아니면 현대의 삶을 따라잡으려 발버둥치는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하다. 전시회에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한 그림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더니 결국 그 그림을 사갔는데, 다음날 또 다시 찾아와 그림값을 부족하게 드린 것 같다며 다시 그림값을 더해주고 간 일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유명한 소설가였다. 아마도 그의 어린 시절 모습이 생각나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예술가가 꾸는 꿈

예술가로서 꿈을 꾸는 그는 예술가다운 소망을 갖고 있다.

그것은 비무장지대에 다문화지대를 조성하고자 하는 바램이다. 비무장지대에 평화와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설치하고, 철책선에 평화를 기원하는 상징 돌을 설치하려 하는 바램. 그는 이것을 세계의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실천하고자 하는 꿈을 품고 있으며, 지난 2009년 세계시민포럼에서 이것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 백두산에서, 길(道)을 묻다, pen on paper, 21x29cm, 2010년, 신영성作 어머니와 아들, pen on paper, 21x29cm, 2009년, 신영성作가족 길을 떠나다, pen on paper, 21x29cm, 2009년, 신영성作

 

정책보다는 인식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단일민족이 우리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던 과거를 지나 이제 우리는 180개국, 121만 명의 이주민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국가이다. 그들과 어떻게 융합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지가 우리의 새로운 숙제가 될 것이다. 그들의 가슴에 거들먹거리는 가진 나라의 사람들이라는 인식으로 남을 것인지, 따뜻한 포용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남을 것인지 그들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하듯, 우리도 익숙한 토양을 그들과 잘 나눠가지는 숙제를 부여받았다.

 

신영성 이사장

1985년-현재 개인전 11회 외 150여 회 기획, 초대전

2004년 비영리단체 I Love Korea 창립

2008년 외교통상부 (사)한국다문화연대 설립

2009년 세계시민포럼